가슴 속에 컨버터블 한 대씩 품고들 살아갑시다.
2001년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 속 빈 디젤과 폴 워커의 랠리는 전 세계 차쟁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닷지 차저와 토요타 수프라의 박진감 넘치는 대결은 많은 여운을 남긴 장면으로 회자되곤 한다.
폴 워커의 4세대 수프라(A80)는 2002년을 끝으로 단종되었다. 하지만 17년 뒤인 2019년 토요타와 BMW의 합작으로 탄생한 ‘GR 수프라’가 그 계보를 잇는다. 공동 개발로 토요타는 GR 수프라를, BMW는 3세대 ‘Z4’를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날 BMW의 ‘Z’
수프라는 쿠페, Z4는 컨버터블. 외관은 전혀 다른데, 외관을 제외한 모든 게 동일하다. ‘실키식스’ 직렬 6기통 B58 엔진와 ZF의 8단 변속기는 GR 수프라와 Z4 M40i에 탑재된다. CLAR 플랫폼을 공유하고,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기어 노브 등 두 차량은 대부분의 부품을 공유한다.
BMW의 2인승 로드스터 ‘Z4’의 이름은 독일어로 ‘미래’를 뜻하는 Zukunft에서 유래했다. Z1은 198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베일을 벗었다. 이 2인승 로드스터는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앞둔 인류가 그려본 ‘미래’였다.
언제 봐도 멋진 Z3
Z1의 뒤를 이은 건 Z3였다. 1990년대 출시한 차량이지만 30여 년이 지난 시선으로 바라봐도 여전히 아름답다. 로드스터의 멋을 잔뜩 올리는 ‘롱노즈 숏데크’ 스타일에 동글동글한 외모는 오늘날까지도 건재한데, 도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본 것인가.
BMW가 제시하는 새로운 Z
2,800cc와 3,000cc 엔진을 탑재한 Z3와 Z3M에는 쿠페 모델이 추가되었다. 전형적인 쿠페의 모습보단 되려 왜건에 가까운 뒤태를 보여주는데, 신발을 닮은 디자인으로 신선함을 안겼다. Z3 쿠페를 향한 향수를 헤아린 것일까. 2023년 5월 BMW는 이탈리아 코모 호수에서 열린 ‘콩코르소 델라간차 빌라 데스테’에서 ‘투어링 쿠페’를 공개했다. Z4를 기반으로 구상한 디자인이라 날렵늘씬한 외모가 눈에 띄는데, 전체적인 형태는 Z3 쿠페를 닮았다. 이 신발 같은 디자인을 잊지 않고 살려낸 데에 전 세계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콘셉트카라 양산 가능성을 재는 건 의미가 없지만, 옛 디자인에 대한 향수를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는 부분에 주목.
2인승 로드스터는 저물어가는 별이다. 유려한 외모는 많은 이들의 심장에 불을 지폈지만,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현대인이 로드스터를 선택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짐을 싣고 여행을 떠나기에도, 일상 속 편안한 주행도 어렵다. 운전자의 펀 드라이빙을 위해 설계된 장난감에 가깝다
모름지기 자동차는 꿈의 물건이어야 한다. 가슴을 울리는 엔진음과 역동적인 디자인에 취해 좋아하는 사진 몇 장쯤 월페이퍼로 박아둘 정도로. 실용과 일상에만 국한해버리기에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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